스님 법문
-
[칠석기도] 8월14일(음력 7월7일) 칠석기도 회향 법문
총무 법해스님 2021-08-14
안녕하세요. 오늘은 칠월칠석이죠. 칠월칠석날은 복(재물복, 건강복, 학업 지혜의 복, 인연복, 등 많은 복이 있습니다.)과 수명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7, 7이라고 칠월칠석, 행운의 숫자 2개가 뭉쳐 있는 날입니다. 칠석의 유래를 살펴보면. “하늘나라에 옥황상제가 계셨어요. 옥황상제에게는 너무 예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은 솜씨도 좋고 영명하고 지혜롭고, 원만하게 컸습니다. 한편, 궁 밖에 견우라는 목동이 있었어요. 소를 치고 우유를 만들어내는 목동이었습니다. 이들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옥황상제 아버님께 허락을 받으러 갔습니다. “우리 둘 가연을 맺어서 결혼을 해도 됩니까?” 아버지는 딸도 예뻤지만, 견우도 마음에 들어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는 결혼한 날부터 둘이 일을 안 하는 거예요, 사랑에 빠져서. 그래서 하늘나라에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베를 짜주고 우유를 만들어야지 그 생산품으로 하늘나라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었거든요. 한 번 경고를 했는데도 이 둘이 변하질 않았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너희 둘 별거를 해라.” 직녀는 동쪽에, 견우는 서쪽에 갖다 놓았어요. 그 사이에는 은하수라는 큰 강이 있어요. 직녀와 견우는 이별의 아픔이 너무 커서 아우성이 났어요. 부모도 안타까워 “그럼, 칠월칠석날 하루 만나라”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강이 너무 큰 거예요. 시간은 하루밖에 없는데, 강이 너무 커서 울고 있으니까 까치와 까마귀도 안타까워 머리를 맞대어 -그래서 오늘이 지나면 다리 놓느라고 까치와 까마귀가 머리가 다 벗겨진대요.- 오작교라는 다리를 놓아줍니다. 빨리 가야 하니까 마차를 탑니다. 그 마차를 씻느라고 하루 전날 꼭 비가 온다고 합니다. 칠석 때는 꼭 비가 오지요? 이 지역에 안 오더라도 어딘가는 비가 오는 거예요. 또 만나서 너무 그리움에 눈물이 나 비가 와요. 그리고 새벽에 또 비가 와요, 헤어지기 싫어서. 그래서 칠석에는 비가 세 번 내린다고 합니다.” 특히 동양사상에서는 이 비가 내린다는 것은 풍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은 지혜이고, 지혜로우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하면 항상 내가 부산을 가야 하는데 신의주를 향해 갑니다. 우리 인간의 목적은 뭐예요? 행복입니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진관사 칠성각은 생남불공을 하면 꼭 성취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업성취가 됩니다. 또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이 칠성각에서 기도를 하면 좋습니다.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일이 안 되는 사람들도 속성취할 사람들은 칠성각에서 기도를 하면 좋습니다. 진관사 칠성각은 아주 영험이 있습니다. 칠성님 옆에는 여러 부처님들이 계세요. 제일 가운데 계시는 분이 치성광여래라고 복을 주려고 에너지 빛을 잔뜩 가지고 있는 부처님으로, 천재지변을 관장하십니다. 우박이 오고, 홍수가 나고 눈사태가 나는 것을 조율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칠성광여래께서는 전쟁이 난다든가 질병이 동할 때 나를 지켜주는 부처님입니다. 세 번째는 모든 재앙을 물리치게 하는 힘을 가진 부처님입니다. 네 번째는 자식을 낳고자 원하는 사람. 그래서 진관사 칠성님께 기도해서 태어난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 다음에 칠성여래 옆에계시는 보살은 일광보살, 월광보살이 계신데, 해와 달을 보관에 가지고 있어요. 빨간 원을 가지고 있는 부처님이 일광보살입니다. 해, 우리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해를 가진 부처님인데, 우리에게 지혜를 줘서 모든 번뇌를 없애주는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월광보살님은 달인데요. 하얀 달을 들고 계신 월광 보살님은 모든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주는 부처님이에요. 그리고 옥황상제께서 여러 구역을, 다시 말하면 서울, 인천처럼, 거기에도 세계를 7 세계로 나눕니다. 첫 번째 최승세계에는 운의통증여래(雲義通證如來)라는 부처님이 계셔서 자손에게 만덕을 주는 부처님, 모든 덕을 갖추게 하는 부처님이십니다. 두 번째 묘보(妙寶)세계라고, 그 세계는 광음자재여래(光音自在如來)가 계시는데, 거기에는 일체 장애와 곤란을 없애주는 그런 부처님이 계세요. 그 다음 원만(圓滿)세계에는 금색성취여래(金色成就如來)가 계시는데 업장을 소멸하게 해주는 거예요. 본인이 업장이 많으면 되는 일이 없어요.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들을 귀가 없어요. 자기 업대로 행동하고 자기 업대로 마음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업장을 소멸하는 진관사 마당에 와서 왔다리 갔다리만 해도 사실 업장이 소멸이 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무우(無憂)세계의 최승길상여래(最勝吉祥如來)라고 참 수숭한 길상 여래가 계시는데, 내가 원하는 바를 다 성취하게 해주는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정주(淨住)세계, 광달지변여래(廣達智辨如來) 부처님이 계시는데, 우리에게 백 가지 장애를 없애주는 그런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는 제 이름하고 똑같은데요. 법해유희여래((法海遊戱如來)라고 법해유희, 법의 바다에서 노는 여래, 유희여래 부처님은 복과 덕을 주는 거예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법문을 해 드리려고, ‘무슨 말을 해 줄까.’ 하면서 ‘나는 법해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복과 덕을 엄청 나눠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법해유희여래가 거기 하늘나라에 복을 여러분들에게 나눠 주는데 제가 대신 여러분들께 나누겠습니다. 제가 칠성각을 너무 좋아하나 봐요. 칠성님이 저도 좀 닮았죠. 제가 칠성 부처님을 닮아야 되겠죠. 항상 치성광여래를 닮아서 일광 월광 양대보살을 모시고 항상 여러분들에게 복과 덕을 베풀 수 있도록 그렇게 도량을 가꾸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7번째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가 계세요. 약사유리광여래는 이름하고 똑같은 거죠. 저희에게 수명을 연장시켜주고, 질병이 걸리지 않게 해주고, 우리의 건강을 관장하는 일체 변고를 소멸하게 해주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러면 “스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말할 때뿐이고요. 집에 가면 고단하고 너무 힘들고 되는 일도 없고. 스님 그렇습니다.” 실은 다 그래요. 돈 많은 사람도 고민이 있고, 돈 없는 사람도 고민이 있고, 잘난 사람도 고민이 있고. ‘저 사람은 고민이 없지’ 하고 들여다보면, 한 껍질만 들춰 들여다보면 다 고민이에요. 부처님도 고민이 있어요. 왜? ‘어떻게 하면 중생들을 빨리 이 진리의 길로 데리고 올까.’ 그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어요. ‘스님, 지옥이 있어요?’ ‘지옥이 있지.’ ‘지옥은 그럼 누가 갑니까?’ ‘내가 가지.’ ‘예?’ ‘자네를 만나러 내가 간다.’ 이 말이에요. 인과를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가요. 내가 지은 대로 내가 받거든요. 우리는 어때요. 매일 ‘아유 힘들어, 아유 힘들어’ 내가 힘들어, 지금 힘들어 하니까, 그다음은 내가 힘들다고 스위치를 켜놨기 때문에 인과가 그대로 힘들다가 와요. 그럼 우리 진관사 불자님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아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내가 계속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다, 괴롭다, 짜증 난다, 신경질 난다, 이런 말을 많이 써요. 저희 어머니 말씀을 제가 드려서 좀 그렇지만, 어머님께 가장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말씀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가 제가 어디 나갔다 와서, ‘아이 신경질 나’하면, ‘그게 무슨 말이냐, 신경질은 어떻게 생긴 거냐? 그런 말을 쓰는 거 아니에요.’ 그때 당시에는 몰랐어요, 그 신경질 난다는 말은 쓰면 안 되는구나를요. 그런데 우리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외할머니가 오셔서, ‘아이고 저 불쌍한 거. 이 고무래기들(경상도 사투리로)을 데리고. 저 불쌍한 거. 불쌍해 죽겠다.’ 자기 딸이 불쌍하겠죠. 왜냐하면 외손녀가 불쌍한 게 아니라, 자기 딸이 고생할 걸 생각하니 불쌍하겠죠. 근데 저희 할머니는 엄청 열심히 절에 다니셨어요. 저희 할머니가 ‘사돈, 불쌍하다란 말은 쓰는 게 아닙니다. 불쌍하다 불쌍하다. 그러면 불쌍한 일이 생깁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저희 친할머니께 들은 말입니다. ‘불쌍하다 불쌍하다. 이러면 불쌍한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분들이 다 부처님인 거예요. 부처님 삶을 사셨던 거예요. 앉으면 염불하고. ‘너희는 저기 안국사 절에 다 이름이 올라있고 인등을 켜고 있다. 교회에 가면 안 된다.’ 근데 저는 교회를 갔어요. 그래서 우리가,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것도 (그냥) 고맙습니다가 아니에요. (마음 깊숙이)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마음을 가지면 그다음은 감사하고 고마운 시간이 생기는 거예요. 누구나 이 사바세계는 다 힘들게 살아가는데, 그 약은 뭐냐. 기도예요. 기도하면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요, 그리고 공덕을 짓지 말라고 해도 지어요. 왜냐하면 감사하고 고맙기 때문에, 마음의 역량이 커지기 때문에. 그냥 그저 좋은 일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제 오늘 7월 칠석기도, 이 이차 인연 공덕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학생대로, 또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대로 또 직장을 가진 사람은 직장을 가진 사람대로,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들은 아들 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여러분들이 이 법문을 들은 사람들은 인과법을 꼭 믿고, 내가 지금 좋은 마음을 일으키면, 그 마음에 등불을 켜면 주변은 환하게 밝아지고, 내가 그 환한 마음을 나누는 순간 그 사람 마음에도 등불이, 법의 등불이 켜지고 지혜의 등불이 켜집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행복해진다, 복이 저절로 온다, 그겁니다. 그거를 여러분들이 꼭 하시면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서 여러분들이 복과 덕과 수명과 모든 것을 받게되실 겁니다. 칠석이 또 오늘 지나가니까 제가 복과 덕을 다 나눠줄 테니까 받으세요. 기도성취하십시오.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 마음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세요. 내일이 백중6재입니다. 우리가 부모님 은혜를 갚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부모님은 은혜를 갚으라 소리도 안 했어요, 사실은. ‘너희 잘살기만 해라.’ 이거예요. 너희 잘 살기만 하면 그것만 해도 만족인데,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은 데로. 좋은 길로 극락세계로 이렇게 모십니다. 참 복이 많습니다, 제가. 염려하시지 말고 아무 집착도 하시지 말고 극락세계에 가십시오.’ 백중기도는 이런 뜻이에요. 부모님, 또 나와 인연 있는 분들이 다 극락세계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그 마음이 백중기도거든요. 그래서 천도입니다. 그리고 백중, 다음 날 23일은 수륙재 입재에요. 수륙재는 몇몇 절만 가지고 있죠. 이 수륙재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행사를 여러분들이 가질 수 있는 운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델타 바이러스가 지금 기승을 부려 아마 조만간 2,000명이 넘을 것 같아요. 광복절 휴가가 있고 그러다 보니까 그저 조심하시고 이럴 때는 또 조심할 수 밖에 없어요. 서로 조심하시면서 참배하시고 규칙을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얼른 지나서 이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
[신중기도,백중기도] 8월 8일 음력7월 신중기도 및 백중기도 5재 법문
종범스님 2021-08-08
안녕하세요. 오늘 2021년 8월 8일, 신축년 7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부처님의 깨달음>,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如來菩提·如來法身·如來境界 여래보리·여래법신·여래경계 <부처님의 깨달음>은 우리말 표현이고, 한자로는 여래보리, 또 여래법신, 여래경계(如來菩提·如來法身·如來境界). 경계라는 말은 세계라는 말과 지위라는 말과 같은 뜻인데요. 불경계(佛境界)라고 부처님이 머문 세계, 부처님이 계신 지위는 어떤 것인가. 경전에서 항상 이야기하고 있어요, 불경계. 그러면 모든 경전에서 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야길 하는데, 경전도 수행을 강조하는 경전이 있고, 불경계를 설명하는 경전이 있어요. 대승경전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수행을 강조하는 경전이 금강경이고, 불경계를 설명한 경전이 화엄경이에요. 경전의 특징이 좀 달라요. 그래서 오늘 법문은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불보리(佛菩提), 법화경에서 말씀하신 불보리, 화엄경에서 말씀하신 불보리, 이런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① 金剛經 法門 금강경 법문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如理實見分제5)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여리실견분 제5)離一切諸相 卽名諸佛(離相寂滅分제14)이일체제상 즉명제불(이상적멸분 제14) 금강경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어떻게 법문을 하고 계시는가. 부처님은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이게 부처님의 깨달음이에요. 하늘이 형상인데 하늘이 하늘이 아니고, 땅이 형상인데 땅이 땅이 아니고, 사람이 형상인데 사람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형상을 제상(諸相)이라고 하는데요, 제상. 그러면 제상이 비상임을 보면(若見諸相非相),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닌 것을 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니라, 바로 여래를 본다. 여래의 깨달음을 보고, 여래가 깨달음으로 얻은 몸, 법신을 보고, 여래가 머무는 세계, 불경계를 본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핵심이 상에서 상이 아닌 걸 보는 게 깨달음이다. 이게 금강경 깨달음이에요. 그럼 범부가 왜 고생을 하느냐. 상에서 상이 아닌 걸 보지 못하고, 상에 매이고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고통은 상에 매이는 데서 온다. 상에 매이지 않는 게 해탈인데, 상에 매이면 생사다. 아주 간단해요. 상에서 상이 아닌 걸 보면 그게 깨달음이다, 이거죠. 왜냐. 상에 상이 없어요. 그럼 상이 왜 생겼냐. 인연으로 생긴 거예요, 인연으로. 인연이란 건 모인다는 뜻인데, 모여서 생긴 거예요. 앞에 시계가 있는데, 시계가 어떻게 생겼는가. 이것저것 모여서 생겼어요. 그래서 시계 자체 상이 없어요. 인연상만 있는 거예요. 이 시계라고 하는 건 눈앞에 보고 있는데 이건 인연상이다. 인연으로 모인 상이다 그거죠. 우리 몸도 부모소생신(父母所生身)이라고, 부모가 낳은 몸이에요. 부모 인연 없으면 못 나와. 그래서 몸에 몸이 없는 거예요. 약견제상이 비상이면 즉견여래니라, 곧 여래를 보느니라. 여래의 깨달음을 보고, 여래법신을 보고, 불경계를 본다. 이 법문은 여리실견분 제5(如理實見分제5)에서 말씀하신 법문이고. 금강경 이상적멸분 제14(離相寂滅分제14)에서는 이일체제상(離一切諸相)하면, 일체제상을 여의면, 모든 상을 여의면, 여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상에 상이 없는 걸 알고, 형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태어나는 것도 형상이고, 죽는 것도 형상인데, 태어나는 것도 인연으로 태어나서 태어나는 게 없고, 죽는 것도 인연으로 죽어서 죽는 게 없다. 그래서 모든 형상에 형상이 없음을 알고, 형상에 전혀 집착을 아니 하면, 그게 이일체제상인데, 일체제상을 여의면, 뭐라 그랬냐. 즉명제불(卽名諸佛)이라, 곧 제불이라고 이름한다, 모든 부처님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다른 게 아니라 일체제상을 여읜 분들이다 이 말이죠. 제상에 매이면 부처가 아니에요. 제상을 여의면 부처예요. 이게 금강경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② 法華經 法門 법화경 법문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시법주법위 세간상상주於道場知已 導師方便說 (方便品제2)어도량지이 도사방편설 (방편품 제2)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이라(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제법이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생사 없는 진여실상이라, 생사 없는 진여실상, 깨달아야 생사가 없는 게 아니라 본래부터 생사가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생사는 인연으로 생긴 거기 때문에 생겨도 생긴 게 아니다 그거죠. 집이 하나 이렇게 생겼는데, 이 집이 인연으로 생겨서 기둥과 벽과 지붕을 걷어내면 집이란 게 없어요. 모든 게 인연으로 생긴 거예요. 그래서 본래부터 진여실상이다. ‘생사 없는 진여실상이다’ 이거예요. 생이 생이 아니니까 불생이고, 멸이 멸이 아니니까 불멸이다. 본래부터 불생불멸 진여실상이다. 본래해탈이에요, 이게. 본래해탈. 본래열반이고. 본래적멸이다. 그래서 불자가 행도이하면(佛子行道已), 불자가 이런 도를 닦으면, 본래 생사가 없고, 본래 적멸이니까, 생멸에 생멸이 없으니까 생멸이 적멸이다. 생멸 없는 걸 적멸이라고 하거든요. 생멸이 적멸임을 안 것이 부처님이다 이거죠. 생멸이 적멸임을 안다. 생멸이 적멸인 데 범부는 모를 뿐이고, 부처님은 알았다 이거에요. 태어난 게 태어난 게 아니고,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게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이말이죠. 그래서 불자들도 그렇게 알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라,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된다. 법화경 28품이 있는데, 방편품 제2의 게송이고요, 역시 방편품 제2에 많이 독송 되는 게송이 있는데, 시법이 주법위하야(是法住法位), 세간상이 상주라(世間相常住). 시법이, 이 법이 주법위, 법위에 머물러서, 시법은 무슨 법이냐, 이 시자 법 법자, 이 법은 무슨 법이냐. 일체제상법, 일체제법법, 모든 법을 다 말해요. 세간법, 출세간법, 범부법, 성현법, 모든 일체제법이 주법위라, 법위에 머문다. 법위는 무슨 법위냐. 진여실상법, 항상 일체세간법이 진여실상법에 머문다. (안경을 들어 보이시며) 이런 게 일체세간법인데요. 이건 자성은 없고, 이 법이 머무는 건 진여실상이다, 이 말이에요. 일체세간법이 진여실상법에 머문다. 그러니까 천지만물이 전부 불생불멸 진여실상법이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제법공상(諸法空相)이다. 이거죠. 마치 꿈과 같아서, 꿈속에서 보이기는 보이는데 없는 거예요, 그게. 그게 없는 거예요. 장자에 보면 장자가 꿈에 나비를 봤다고 그러는데, 그 나비 본 걸 대단하게 기록을 해놨거든요. 그 무식하기 짝이 없어요. 나비가 없다는 것을 장자가 꿈에도 몰랐어요. 꿈에 본 나비는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어째서 봤냐. 평소 생각이 있어서 나비를 본 거예요. 그래서 나비는 평소 생각이고, 나비의 존재 실상은 없는 거다, 이걸 장자가 꿈에도 몰랐거든. 그러니까 이게 안다는 게 다 허망한 거예요. 죽는다고 고함을 지르는데, 죽음이 없는 걸 모르거든. ‘나는 살아야된다.’고 애쓰는데 삶이 없는 걸 몰라. 그럼 뭐만 있냐. 진여실상법만 있다, 불생불멸 진여실상. 그걸 깨달으면 여래고, 깨닫지 못하면 상에 집착하는 범부다. 이게 불교이 가르침이에요. 그럼 모든 법이 법자체가 없고 그것이 불생불멸 진여실상이다. 자체법은 진여실상이다. 목전현상은, 나타난 현상은 인연현상이다 이거죠. 인연현상이란 잠들어서 잠결에 뭐 보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그건 잠들었기 때문에 보는 거고, 평소의 생각이 모였기 때문에 나타난 건데, 잠에서 깨면 꿈에 본건 없어지고, 또 잠이 들었다 하더라도 깊은 잠에, 꿈도 없이 자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시법이 주법위하야, 어떻게 되냐. 세간상이 상주이니라. 세간상하면 일체 생멸법인데, 나고 죽는 생멸법인데, 이 생멸법이 상주진여법이다. 항상 머무는 진여법이다 이거죠. 그래서 삼세제불은 진여제불이라고 상주제불이라고 그래요. 항상 머무는 부처님이라고. 그래서 세간상이 상주라. 항상 머무는 법이다. 이게 불생불멸 진여실상법이다, 이 말이죠. 어도량에 지이하고(於道場知已), 석가모니께서 보리도량, 깨달은 장소를 보리도량이라고 하는데, 보리도량에서 뭘 깨달았나, 이걸 깨닫고, 알고, -이자는 어조사니까 안 새기고,- 도량에서 알고, 도사가, 도사는 부처님인데, 방편설하시니라, 방편으로 말씀하셨느니라(導師方便說). 이 생멸법이 진여법인 걸 알고, 부처님이 그걸 알게 하기 위해서 가르침을 폈는데, 그 가르침은 방편으로 가르쳤다.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는 아이대로 실천할 수 있고, 어른은 어른대로 실천할 수 있고, 옛날 사람은 옛날 사람대로, 지금 사람은 지금 사람대로 다 실천할 수 있는 게 방편이거든요. 요즘 말로 하면 접근성이라고 그래요, 접근성. 접근할 수 있어요. 접근할 수 있는 걸 방편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불교는 이 나고 죽는 법이 나고 죽음이 없는 걸 깨우치는 건데, 그걸 깨우치는 방법은 방편으로 깨우친다. 이게 불교죠. 법화경 방편품 제2에서 가르친 내용이에요. ③ 華嚴經 法門 화엄경 법문爾時世尊 處于此座 於一切法 成最正覺 이시세존 처우차좌 어일체법 성최정각智入三世 悉皆平等 其身充滿 一切世間 지입삼세 실개평등 기신충만 일체세간身遍十方 而無來往 智入諸相 了法空寂신변시방 이무래왕 지입제상 요법공적(世主妙嚴品제1) (세주묘엄품 제1) 화엄경에서는, 화엄경은 구회 설법인데요, 9번 법회를 열어서 법을 설해요. 초회 설법, 제일 처음 설법한 내용이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인데, 화엄경 80권 제일 처음 첫 권을 딱 펴면 뭔 말부터 나오냐 하면, 부처님의 깨달음 설명부터 나와요. 그게 화엄경이에요. 다른 경전은 절대 그렇질 않아요. 부처님 깨달음을 제일 먼저 딱 가르쳐 주는 게 화엄경이에요. 여래의 깨달은 세계를 설명하는 게 화엄경이거든요. <대방광불(大方廣佛)>을 이야기하는 게 화엄경이에요, 대방광불. 어떻게 돼 있냐. 이시에 세존이(爾時世尊), 이때에 세존 부처님께서 처우차좌하야(處于此座), 보리좌, 깨달은 좌석, 보리좌에 머물러서, 어일체법(於一切法)에 성최정각하시니(成最正覺), 일체법에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니, 이렇게 되는 거죠. 깨달음을 딱 얻고 나니까 뭐가 생겼냐 하면 지혜가 생겨요. 깨닫기 전에는 망상인데, 망상, 깨달은 후는 지혜예요. 그래서 망상이 변해서 지혜가 되는 걸 깨달음이라고 그런다. 범부는 망상으로 살아가고 여래는 지혜로 살아가고. 그게 미혹과 정각의 차이점이에요. 미혹은 범부인데 망상으로 살아가요, 망상. 뭔 망상이냐. 늙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늙은 거 걱정하고, 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죽는 거 걱정하고. 전부 망상이에요. 며느리 얻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며느리 잘못 들어오면 어쩌나 그런 거 걱정하고, 결혼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해서 결혼도 못 해요. 전부 망상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깨달음을 딱 얻은 순간에 지혜가 생겼는데, 지혜는 어떻게 된 거냐. 삼세에 들어가서, 지입삼세하야(智入三世), 실개평등(悉皆平等)하고, 지혜는 현재 눈앞의 것만 아는 게 아니라, 과거 것도 알고, 현재 것도 알고, 미래 것도 알고, 다 아는 게 지혜예요. 근데 지입삼세하야 다 평등해요. 과거를 아는 지혜나 현재를 아는 지혜나 미래를 아는 지혜가 다 평등해요. 그다음에 기신이 충만 일체세간이라(其身充滿 一切世間). 깨달은 몸이 법신인데, 그 법신이 일체세간에 가득했더라. 그러면 깨닫기 전에는 사대육신인데 깨닫고 나니까 그건 청정법신이다. 깨달음을 다 얻는 순간에 내 몸은 사대육신 몸이 아니라 청정법신이 내 몸이 됐다 이거죠. 그래서 이 사대육신에서 청정법신을 아는 게 깨달음이에요. 깨닫기 전에는 이 몸이 사대육신인데, 지수화풍, 근육의 몸인데 이걸 내 몸이라고 그래요. 근데 깨달음을 딱 얻은 순간에 청정법신이 내 몸이고, 이 몸은 인연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부모소생신이지 청정법신은 아니다. 진여청정신, 부모소생신. 이 몸은 부모소생신이에요. 여기서 깨달음을 못 얻으면 이 몸을 내 몸이라고 집착하면서 살아요. 그런데 진여청정신을 안 순간에 이 몸이 있든지 없던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진여청정신은 일체세간에 충만하기때문에 그래요. 예를 들면 꽃은 피고 지고 장소가 있지만은 봄은 장소가 없어요. 그냥 온 누리에 충만한 거예요. 그래서 이 몸은 봄에 피어난 한 송이 꽃에 불과하다, 그거죠. 신변시방하야 이무래왕하되(身遍十方 而無來往), 진여청정신은 시방에 두루 해서 오고 가는 게 없어요. 그냥 상주해요, 상주, 상주법계. 그래서 왕래, 내왕이 없어요. -한자에서는 왕래라고 안하고 내왕이라고 많이 해요. 오고 간다, 올 래자를 먼저 쓰고, 갈 왕자를 다음에 쓰고. 보통 구어체 말에서는 왕래라고 하는데, 재밌어요. 내왕, 왕래, 말을 다 돼요. 재밌는 거예요.- 몸이 시방에 두루 해서 내왕, 오고 가는 것이 없으되, 지입제상(智入諸相)하야, 거기에, 청정법신에 광명지혜, 지혜광명이 있어요. 오고 가는 몸이 없는데 거기에 지혜광명이 있는 게 깨달은 보답으로 얻은 지혜이기 때문에 그래요. 사지(四智)를 원성, 네 가지 지혜를 원성한다. 이게 정각공덕이에요. 바르게 깨달은 공덕으로 사지를 원성한다, 네 가지 지혜를 이룬다. 그래서 이 지혜를 깨달은 보답으로 얻었다고 해서 보신이라고 해요, 보신. 깨달은 보답으로 얻은 몸이 사지, 네 가지 지혜예요. 지입제상하야, 지혜가 모든 상에 다 들어가서, 형상마다 지혜가 보면 다 알아요. 제상에 다 들어가서, 요법공적이라(了法空寂), 법이 공적함을 안다. (종이를 들어 보이시며) 세간법으로 보면 종이인데, 지혜법으로 보면 이게 공적이요. 근데 범부는 종이라는 것밖에 몰라. 이게 공적함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집착하는 거예요. 우리 몸이 세간법으로 보면 사대육신인데 지혜로 보면 이게 공적이여, 공적. 그래서 청정법신은 오고 가는 게 없는데, 지혜가 모든 형상에 다 들어가서 일체 형상이 공적함을 안다. 이렇게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어요. 이게 부처님의 깨달음이거든요. 爾時世尊 在摩竭提國阿蘭若 法菩提場中 이시세존 재마갈제국아란약 법보리장중始成正覺 於普光明殿 坐蓮華藏師子之座시성정각 어보광명전 좌연화장사자지좌 妙悟皆滿 二行永絶 達無相法 住於佛住 묘오개만 이행영절 달무상법 주어불주得佛平等 到無障處 所行無礙 普見三世득불평등 도무장처 소행무애 보견삼세(如來名號品제7)(여래명호품 제7) 그다음에 화엄경 제2회 설법이 있는데, 이회 설법이 어떻게 시작되냐. 이시에 세존이(爾時世尊) 재마갈제국아란약(在摩竭提國阿蘭若) 법보리장중하사(法菩提場中), 마갈제국 아란약 법보리장중에 계시면서, 시성정각(始成正覺)하시고,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고, 어보광명전(於普光明殿)에서, 보광명전이라고 하는 도량에서, 좌연화장사자지좌(坐蓮華藏師子之座)하시니, 연화장 사자의 자리에 앉으시니, 이렇게 시작을 해요. 이게 이회 설법 화엄경 시작이에요. 그럼 어떻더냐. 묘오가 개만하시니(妙悟皆滿), 묘한 깨달음이, -묘오란 건 묘할 묘자, 깨달을 오자인데, 바를 정자, 깨달은 각자, 정각(正覺)이라고도 하고, 묘할 묘자, 깨달을 각자, 묘각(妙覺)이라고도 하는데, 착할 선자, 깨달을 각자, 선각이라고도 하고, 묘할 묘자, 깨달을 오자, 묘오라고 하는데, 묘각, 정각, 선각, 묘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명칭화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묘오라고 했어요.- 묘하게 깨달음이 개만하니, 다 원만하니, 못 깨달은 부분이 하나도 없이 묘한 깨달음이 다 원만하니,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행이 영절하며(二行永絶), 두 이자, 행할 행자, 여기서 행이라는 것은 생각인데, 두 가지 생각이 영원히 끊어졌어요. 보인다, 안 보인다, 좋다, 나쁘다, 죽는다, 산다, 이런 망상분별, 번뇌망상, 이게 두 가지 생각인데, 번뇌망상 두 가지 생각이 영원히 끊어졌어요. 이행이 영절이여. 번뇌망상이 영원히 끊어졌어요. 그러면 중생 고뇌가 전부 번뇌망상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번뇌망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수 없어요. 이거 참 문제에요. 우리나라 세종 때 정치가 제일 좋았는데, 그때도 번뇌망상이 많은 사람은 절대 행복하지 않았어요. 세종대왕 때라고 국민들이 전부 다 행복했을 거 같아요? 부모 잘 만났다고 다 행복한 거 아니에요. 마음의 번뇌망상이 깨끗해져야해요. 옛날 어른들은 번뇌망상을 뭐라고 말했냐 하면 하잖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하잖은 생각. 이게 뭔소린가. 보잘 것 없는 생각. 쓸데없는 생각을 하잖다, 하는 것 같지 않다, 하는 것 같지 않게 하는 걸 하잖다고 하는데, 쓸데 없는 생각이다 이말이에요. 쓸데없는 생각을 어렵게 표현하면 망상이에요. 망상을 더 어렵게 표현하면 번뇌라고 해요. 그러니까 하잖은 생각이 없어야 된다. 하는 것 같지 않은 생각, 쓸데없는 생각, 번뇌망상이 영원히 끊어지고. 달무상법(達無相法)하며, 무상법을 통달해서, 통달은 안다는 말이고, 상에 상이 없는 걸 알았어요. 제상에서 비상을 본다고 했듯이, 여기서도 상에 상이 없는 걸 알았다. 이게 달무상법이에요. 이게 묘하게 깨달음이 다 원만하다는 거 하나하나 설명하는 거거든요. 두 가지 생각이 영원히 끊어지고, 형상없는 법을 알고, 달무상법하며, 주어불주(住於佛住)하며, 두루히 머무르며 머물며, 깨달음을 얻고나면 두루히 머무르며 머무는데, 불은 진여불, 법성불, 청정불, 진여법성청정법에 머문다. 번뇌망상, 생로병사에 머물질 않아요. 그런데 이게 걱정이 될 때, 진여청정 삼매에 들어가면 그만이에요. 진여청정 삼매. 무서울 때, 진여청정 삼매에 들어가면 그만이에요. 주어불주여. 불주에 머문다말예요. 진여불, 청정불, 법성불, 거기에 머물며, 득불평등(得佛平等)하며, 진여, 청정, 법성에 평등을 얻으며, 깨달음은 평등해요. 억울하고 분한 거 없어요. 억울하고 분한 게 왜 생기냐. 평등을 몰라서 생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열 살도 못 살고 죽고, 어떤 사람은 100세를 넘게 살고, 10살에 죽으나 100살에 죽으나 살아보면 별거 아니에요, 그게 그거여. 산다고 애만 먹었지, 죽을 때 남는 거 씨알머리도 없어요. 내가 70년 이상 살아보니까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 인생이 춘몽이여. 봄날에 꿈꾸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게 10살이나 100살이나 다름이 없다는 걸 아는 게 평등이거든요. 이건 깨달아야 평등이 있지, 상에 집착하고 상에 미혹하면 평등이 없어요. 차별뿐이요. 부처님은 이렇게 진여법성에 평등을 얻었다. 평등을 얻으며, 도무장처(到無障處)하며, 장애 없는 곳에 도달했어요. 장애가 하나도 없어. 왜 그러냐. 되고 안 되고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평등하기 때문에.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차이가 없어요. 다만 생각으로 된다고 좋아하고, 안 된다고 싫어하고. 오직 생각일 뿐이에요. 생각이란 말을 정신치료에서는 자기문제라고 그래요, 자기문제. 왜 화를 내느냐. 자기문제에요. 화 낼 일이 없어요. 옛날에 ‘왜 시어머니 이마에 줄이 생겼나?’ ‘저녁을 굶어서 그렇다.’ 이마에 줄 생긴 게 시어머니 자기 문제에요. 자기문제. 왜 웃냐. 자기문제에요. 자기 감정으로 웃는 거예요. 왜 우냐. 자기문제에요. 자기 감정으로 우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장애는 번뇌망상에서 온다. 근심걱정은 자기문제다. 근심걱정이 싹 사라지면 장애는 없어요. 이렇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명했거든요. 그리고 소행이 무애(所行無礙)하며, 하는 바가 아무 장애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화성에 가고 싶으면 화성에 가고, 별에 가고 싶으면 별에 가고, 달에 가고 싶으면 달에 가고. 이게 신통자재에요, 신통자재. 이게 깨달음의 세계다 이 말이죠. 요새 화성에 간다고 난리인데, 내가 볼 때는 우스워. 거기 가야 뭐 없어요. 화성이 공했어. 거기 가 봐야 먼지만 풀풀 날리고, 먼지 하나하나가 다 자성이 없이 인연 허상인데 거기 왜 쫓아가냐 이 말이에요, 내가 볼 땐. 여기서도 망상분별이 많아서 행복하지않은데, 화성에 간다고 망상분별 그대로 가지고 행복할 거 같아요? 천만에 말씀이에요. 답답해. 근데 내가 이런 말 하면 내말 듣나. 안 들을 줄 아니까 말 안해요. 말 안 들어요. 그래서 소행이 무애하며, 보견삼세(普見三世)하며,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널리 다 본다. 100만년 후에가 어떻고, 천만년 후에가 어떻고, 천만년 전이 어떻고, 지금 현재가 어떻고. 널리 삼세를 봐요. 이게 깨달음이에요. 그러면 이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중생도 가지고 있는데, 망상분별에만 계속 쫓아가며 살아서 깨달을 생각을 안해요. 그래서 망상에만 의지하고,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옛날 선지식들은 담마기금(擔麻棄金)이라고, 삼 덩어리를 짊어지고 금덩어리를 버린다, 그렇게 설명했어요. 옛날 삼이라는 게 옷도 해입고 하는 삼 껍질이 있는데, 누래요. 담은 짊어질 담자에요. 길 가던 나그네가 삼 덩어리를 짊어지고 내려가는데, 황금 덩어리가 하나 있는 거예요, 옆에. 그런데 황금이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지금까지 짊어지고 온 게 너무 아까워서 그 삼덩어리는 계속 지고 가고, 그 금덩어리는 안 돌아봐요. 이걸 버릴 기자, 금이라는 금자, 기금이에요, 기금. 그러니까 이런 깨달음을 얘길해도 지금까지 망상번뇌에 의지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걸 버리지 못해요. 그래서 삼덩어리 짊어지고 가는 나그네가 금덩어리를 보더라도 그대로 삼덩어리를 짊어지고 금덩어리를 버린다. 그래서 이 가운데서 정말로 보리심을 일으켜서 깨달음을 구해서 닦는 분은 금방 깨달아요. 발심이 얼마나 크고 진실하냐에 따라서 금방 깨달아요. 발심이 크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면 잘 못 깨달아요. 깨달음은 발심에 있는 거지 세월에 있는 게 아니에요. 발심이 진정하고, 발심이 용맹하면, 진정발심, 용맹발심, 금방 깨달아요. 왜냐. 지가 저를 아는 거기 때문에 어딜 갈 것도 없고, 순서도 없고, 그래서 그렇다 그거죠. 그건 마치 길 가는 나그네가 먼 길을 고생고생해서 짊어지고 온 삼 덩어리라 하더라도 금을 딱 보면 ‘아, 이거 좋네.’하고 삼덩어리를 가차없이, 미련없이 탁 버리고 금덩어리 지고 가는 것과 같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
[백중기도] 8월1일 백중기도4재 법문
가섭스님 2021-08-01
오늘은 백중의 4번째 재입니다. 벌써 한 달이 되어갑니다. 이제 3번만 더하면 회향을 하게 됩니다. 회향은 다른 말로 ‘하안거를 마친다’고 합니다. 스님들의 여름 수행 기간이 백중 기간이기 때문에 하안거도 얼마 안 남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4번째 함께 나눌 법담은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대전환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 대전환이라는 것이 백중기도의 핵심이다.>입니다. 오늘까지는 마음의 전환에 관련된 주제로 말씀을 올릴까 합니다. 지지난 주의 말씀을 축약해서 드리면, <마음을 전환하기 위해서 조건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조건. 조건은 기억의 습관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어떤 조건에 따라서 마음을 내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그게 전부 다 습관에 의해서 기억이 저장되고, 그 기억은 습관에 의해서 올라오게 된다는 겁니다. 조건은 철저하게, 분명하게, 상대방에 따라서 변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나의 기준에 따라서 변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우리는 자꾸 착각해서 조건이 맞지 않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상대방이 원인인 것처럼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출발입니다. 그걸 명확하게, 명증하게 이해해야만 마음이 쉴 수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굉장히 쉽죠. 쉬운 게 어려운 겁니다. 불교는 나 스스로가 관조해야 되고, 성찰해야 되고, 변화하고 전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치는 가장 쉬운데, 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막상 하려고 하면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막상 해서 어려운 단계에 올라가면 이보다 쉬운 게 없어요. 오늘은 오는 데 갑자기 비가 많이 왔어요. 여기만 왔어요. 서울지역에 다 온 게 아니라 여기만 왔어요. 남산을 기준으로 강남 쪽에는 비가 안 왔어요. 그러고 보니까 이번 주에 유튜브 광고를 안 하고 시작했네요. 유튜브로 보는 분들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인이 4인을 책임지고 진관사TV를 구독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래서 백중 끝날 때까지 2만 명 달성하기, 지금 만명이 조금 넘는데, 12,000명, 15,000명이 아니라 2만 명이 되면 스님들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른 사찰에 비해서 진관사TV는 편집본이나 법문 정리된 거 올라오는 거 보면 거의 방송국 수준이에요. 잘 되고 있습니다. 이런 퀄리티 높은 고품격의 방송을 왜 안 보는지 모르겠어요. 많이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도 많이 달아주세요. 제가 들어오기 전에 확인했더니 120분정도 보고 계시던데, 댓글을 달아주셔야 돼요. <스님, 사랑해요> <마음에 정원에 와서 행복합니다> 등 달아주시면 좋겠지요. 비가 많이 왔는데, 진관사 오다 보면 늘 보게 되는 장면이 있어요. 등산가는 분들이에요. 등산 가방을 하나씩 메고, 양팔에 스틱을 쥐고 이마에 수건을 두르던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 끼고, 북한산을 향해서 열심히 올라가는데 거의 모양이 비슷해요. 등산복에 모자나 스타일이 비슷하죠. 죽 올라가는데, 오늘은 갑자기 비가 오니까 사람들이 당황해서 처마 밑이나 일주문 밑에 몇몇 분들이 비를 피하고 있더라고요. 소나기인데 양도 어마어마하고, 저도 조금 맞았습니다만. 비가 여기만 와요. 강남에는 비가 안 왔단 말이죠. 여기서 비를 맞은 사람은 비를 맞은 것만 생각하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전체 장마기간이라 비가 오더라도 7,000피트만 올라가면 비가 안 와요. 비행기 타고 비가 오는 날 출국하셨던 분들은 경험해보셨겠지만, 인천공항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비행기가 이륙해서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말짱하지요. 하늘이 말짱하고 비가 안 와요. 갑자기 비를 맞으면 궁시렁거리게 되잖아요. 스님들이 비를 맞으면 그렇다고 하잖아요. 해인사에서 공부할 때 여름에 멋 낸다고 옥광목을 며칠 풀을 먹여 갈아입고 밀짚모자 쓰고 하얀 고무신에 광택을 내서-하얀 고무신에 광택을 내면 반짝반짝합니다.- 포행을 하러 가는데 소나기가 와요. 옥광목이 소나기를 맞으면 몸에 탁 달라붙어요. 며칠 동안 애쓴 것도 애쓴 거지만, 민망해요. 나도 모르게 자꾸 궁시렁거리게 돼요. 중얼중얼 하게 된다고요. 내가 그때 생각하기를 ‘이래서 중이 비를 맞으면 중얼거리게 되는구나.’ 우리가 비가 오는 이곳에서 비를 맞는 사람이, ‘아, 저 하늘로 가면 비가 안 올 거야, 해가 말짱할 거야’라는 생각이 들까요? 안 들어요. 비를 맞을 때는 맞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돌려서, 마음을 전환해서 한 번 더 생각하면 ‘아, 지금 비가 오지만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거야.’라는 생각도 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왜 마음의 전환을 해야 하느냐 하면, 그렇게 한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이 영원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전환을 반드시 경험을 해봐야 된다, 내 마음 스스로가 전환할 수 있는, 돌릴 수 있는 연습을 해봐야 합니다. 오늘은 <마음의 전환을 하기 위해서 인연을 갖춰라.>라는 주제로 짧게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마음의 전환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증득하려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전환을 가질 수 있는 인연들을 갖춰야 되요. 그것은 상상이나, 생각이나, 관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연들을 하나씩 갖출 때 하나씩 가져올 수가 있어요. 첫 번째 인연은 뭐냐. 내가 마음을 전환할 수 있는, -마음의 전환은 기억을 바꾸는 거라고 했잖아요,- ‘기억의 습관들을 바꿔 가는 거다, 그러면 조건이 바뀐다.’고 했는데, 기억의 바탕들을 바꿀 수 있는 일상에서의 도구를 하나씩 가져야 합니다. 도구. 그 도구가 뭐냐 하면 믿음의 도구. 일상에서 내 마음을 전환할 수 있는 기준점을 하나 잡는 거예요. 지금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데, 우리나라 양궁이 금메달을 땄잖아요. 안산이란 선수가 있는데 인기가 만점이에요. 10점 만점에 만점이에요. 근데 그 양궁을 할 때 10점을 맞추면 되잖아요? 10점이 잘 안 될 때는 9점도 되고 8점도 되는데 5점이나 그 이하는 가지 않아요. 왜 5, 6점으로 내려가지 않나 하면 활을 쏠 때 영점을 잡아요. 기준을 잡는다 말이에요. 군대 갔다 온 분들은 그걸 영점사격이라고 얘길 하는데, 내가 쓰는 그 도구를 가지고 마음의 과녁을 맞출 때 그 마음이 습관의 영점을 맞춰야 되는 거예요. 그 도구를 통해서 내 마음의 영점을 맞추는 것, 연결하는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첫 번째로 인연을 갖출 때 믿음의 도구를 갖추라는 겁니다. 믿음의 도구란 부처님의 그림이나 불상, 작은 불상이나, 또는 사구게 같은 경구 등입니다. 또는 ‘진관사 마음의 정원’이라고 써놓고 그것도 바라볼 때마다 진관사를 생각하게 되고 마음의 정원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믿음의 도구죠. 요즘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BTS라는 가수가 있지요. BTS 멤버중에 한 사람이 미륵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자기 작업실에 뒀다가 촬영이 된 거예요. 전 세계 아미들이 그 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매료가 되어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느냐고 한대요. 그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든 거예요, 지금도 판매를 하고 있어요. 색깔도 다양해요. 회색도 있고, 주황색도 있고. 그런 것들을 하나 구입해 놓고, 자기가 기도하거나 또는 출퇴근할 때 반드시 보는 화장대 앞 같은 데 놓고서 그것을 보는 순간 ‘아, 내 마음을 전환시켜야 되지, 내 마음을 들여다 봐야 되지, 내 마음을 반조해야 되지’하는 거예요. 그런 믿음의 도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첫 번째는 믿음의 도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는 게 중요하잖아요. 지금 백중 기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을 전환시키는 경험을 하고, 그 힘을 얻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음의 습관이 있어요. 여러분 다 핸드폰 가지고 계시잖아요, 없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IT선진국이기 때문에. 지금 핸드폰 다 꺼내 보십시오, 그리고 켜보십시오. 화면이 뜨잖아요. 핸드폰을 보면 그 취향이 다 담겨져 있어요. 핸드폰이 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기종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웹이라든지 또 여러 가지 편리 기능들이 개인에 따라 다 달라요. 왜 다를까요? 우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씀이라든지 말하는 거라든지, 행동하는 게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게 업이에요. 카르마. 카르마가 어려운 게 아니에요. 핸드폰만 바라봐도 나의 카르마가 반사,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다든가, 조금 전 말씀 드린 BTS의 뮤직비디오를 본다든가,-혹시 시간 되시면 BTS의 뮤직비디오의 봄날이라고 하는 뮤비가 있어요. 한 번 보시면 좋습니다. 이런 것까지 안내하는 법사는 그동안 없었을걸요.- 뮤직비디오를 볼 때 그게 전파를 타고 와서 화면을 비추는데, 그 뮤직비디오를 끄고 뉴스를 보고 싶어서 포털 검색을 했어요. 뉴스 화면이 뜨지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의 마음과 마음의 당체(當體)라는 게 그 원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마음에 비춰지는 핸드폰의 본체를 자꾸 바꾸려고 해요. 본체를 바꾸려는 게 핵심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 화면에 비춰지는 그 무엇을 끄집어내서 보느냐, 그게 핵심이라는 거예요. 우리 핸드폰은 건전하죠. 그런데 요즘 뉴스에 나오는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 핸드폰을 보면 하지 말아야 할, 없어야 될, 내지는 보기가 민망스러운 그런 그림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그래요. 똑같은 핸드폰인데도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우리 진관사 신도들이 핸드폰을 다 모아놓고 보면 안의 내용이 다 다릅니다. 그동안의 검색기록이 다 남잖아요. 그래서 핸드폰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마음이 선량한지 음침한지, 맑은지 어두운지, 괴로운지 즐거운지는 핸드폰의 검색기록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다른 걸 볼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나의 마음의 기록들이거든요. 내 마음의 상에 비췄던 기록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마음을 전환시킨다는 것은 마음의 당체는 다 똑같다는 거예요. 이 원리를 명확하게 인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반조하지 않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지 않으니까 그게 그건지 구별하지 못하고, 뭉뚱그려져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더 쉽게 말씀드리면, 마음에서 봤을 때는 즐거운 마음이나 괴로운 마음이나 같은 질량이란 말이에요, . ‘즐거운 거니까 좋고 괴로운 건 싫다’라는 건 우리가 초보적인 단계에서 마음공부할 때 하는 얘기에요. 이 진관사의, 고품격사찰의, 천년사찰의 신도들이라면 거기에 머무르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합니다. 업그레이드가 뭐냐 하면 좋은 마음이나 괴로운 마음이나 같은 마음씀이에요. 같이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좋다고 그래서, 마음이 행복하다고 거기에 희희낙락할 필요도 없고, 마음이 괴롭다고 해서 우울해서 스스로가 슬퍼질 필요가 없다는 거죠. 왜 그러냐. 돌리면 되거든요. 전환시키면 됩니다. 우리는 전환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도도 하고 참선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진관사 와서 백중기도를 하는 것은 이것을 계기로, 이것을 통해서 어떠한 것을 얻으려고 출발을 했지만, 백중기도를 통해서 마음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두 번째 인연을 갖추어야 합니다. 반조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반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첫 번째는 믿음의 도구를 갖춰라. 두 번째는 반조하는 습관을 가져라. 이 마음은 스스로가 반조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음은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정말 심연의 깊은 마음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의 반조를 하기 시작하면 그 맛을 봐야 하는데, 그 맛을 보면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상이 다 나쁘다거나 다 옳지 않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대전제가 있었죠. 똑같은 거란 거예요. 똑같은 건데 통상적으로 좋다 나쁘다 나타났다 사라졌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생멸법으로. 근데 원래는 그 자리가 그 자리란 거죠. 사라지는 자리나 나타나는 자리나. 지난주에 우리 종단에 엄청난 변화를 가진, 어떻게 보면 조계종이라고 하는 통합종단이 62년도에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오는데 있어서, 근현대의 흐름에 맞춰서 가장 많이 변화시킨 어른이 입적하셨어요. 옛날에 봉암결사라고 하는 것이 우리 조계종의 수행전통을 계승한 분들이라면, 그 면면히 꺼지지 않고 내려왔던 역사를 우리 현대의 빛깔로 잘 맞췄던 어르신이, 월자 주자 큰스님이시잖아요. 입적하셨어요. 저도 그 영결식에 갔다 왔는데, 절집에서는 다비를 하잖아요. 그다음 날 몇몇 조각으로 남은 큰스님의 유골을 모아서 사리함에 모셔서 법당에 안치하는 모습을 어떤 스님이 찍으셔서 보내줬어요. 엄청난 많은 일을 하셨던, 현대 조계종사를 들춰보면 페이지 페이지마다 나오는 어른이거든요. 그런데 그 어른이 뼈 하나로 모셔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생로병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사라지는데,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잖아요. 어르신이, 살아계실 때는 엄청난 종단 일을 하고 중생지원을 하고 복지활동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까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이거죠. 그 대전제를 정말 굳게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이 변화하는 것이 힘을 가질 수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여기에 컵이 있고, 시계가 있고, 탁자가 있는데, 망치로 깨면 깨지는 성질은 똑같은 거예요. 근데 모양은 다 다르게 되어 있잖아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거는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다 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다 깨질 수 있는 거거든요. 그 마음을 가져야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는 거예요. 그 마음은 전환시켜야 얻는 거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진관사에 와서 백중기도를 하는 것은 그 마음의 전환을 가지기 위한 거예요. 두 가지 인연을 갖추라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요. 지금 영상을 보고 있는 모든 분들은 영상을 보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는 그런 연습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괴롭다고 거기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야 자유인이 되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드리면서, 마음의 전환을 갖기 위한 인연들을 두루두루 갖추시고, 또 반조해서 마음의 힘을 얻는 백중4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방역이 연장이 됐습니다. 개인 방역들 잘 지키시고. 4단계가 연장이 되는 바람에 아마 백중회향 때까지 지금처럼 비대면으로 진행을 해야될 거 같은데요,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리지만 법우들에게, 아는 신도들에게 권선하셔서, 지금의 권선은 진관사TV를 같이 보도록 하는게 가장 수승한 권선이에요. 불사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장 큰 불사는 진관사TV 구독자를 2만명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대작불사입니다. 이 4단계 동안에 대작불사를 잘 이루어서, 백중이 3주 남았으니까 조금 더 여유있게 8월 말까지 2만 명을 성취해서 많은 분들이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인연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백중기도] 7월 25일 백중기도 3재 법문
총무 법해스님 2021-07-25
안녕하세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더운 날씨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곡식과 과일들이 이 햇빛을 받아서 무럭무럭 익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실과 곡식들이 또다시 우리 사람들에게 공양됩니다. 이 더위에 대해 이렇게 마음을 돌리시면 여러분들이 불편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관사에서는 해마다 백중 49일 기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3재입니다. 오늘은 매번 백중기도를 하는데 왜 백중기도를 하며, 백중기도를 하면 어떤 공덕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현생의 우리 가족들이 기도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피력과 조상의 음덕을 받아서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돈도 잘 벌고, 취직도 잘 되고, 사업도 번창하고, 아이들은 공부도 잘하고, 이렇게 모든 집안사가 원만하게, 아무 장애 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목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선망부모, 나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인연 있는 모든 영가님들이, 우리의 기도공덕으로,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스님들이 정진하는 힘으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 맞으시죠? 우리는, 가족이 다 편안하고, 조상님들은 이 법문을 듣고 정토에 나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는 극락세계에 꼭 태어나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뭘 해야 될까요? 진관사에서는 때로는 지장경을 독송하기도 했고, 때로는 금강경을 독송하기도 했고, 근래에는 부모은중경을 독송합니다. 주지스님께서 ‘부모의 은덕이 가장 크니, 부모님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 신도님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하셨어요. 부모님의 은덕이 이런 이런 공덕이 있다는 게 <부모은중경>입니다. 부모님의 은덕을 갚을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미산을 부모님을 업고 돌아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빚을 지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백중을 기해서 부모님의 그 큰 은혜를 갚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갚느냐. 첫 번째는 부모님이 평소에 불교를 믿지 않으시고, 또는 절에 올 기회도 없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었던 분들에게 부처님의 믿음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도재(薦度齋)라고 합니다. 천거할 천자에, 건널 도자 또는 제도할 도자입니다. 천도재로 그 은혜를 갚습니다. 천거를 어디로 하느냐? 극락세계로 천도를 해줍니다. 옮길 천자, 천도라고도 합니다. 길을 옮겨준다, 중생계에 계시는 부모님을, 또 고통을 받고 있는 부모님을, 살아생전에 집착을 가지고 인연이 없어 불교를 만나지 못하신 분들, 또는 아주 기도를 열심히 하시고 돌아가신 분들도 원생(願生)을 하시라고 백중을 맞이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부모님께서 다 잘 사셨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많은 업을 지으며 사시다 돌아가셨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재계(齋戒), 업을 다 씻어주는 인연이 이 백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부모님이 자식을 키운다고, 또 본인의 심성으로 많이 모으는 데만 급급해서 인색하신 부모님도 많을 겁니다. 인색하신 부모님을 위해서 늘 베푸는 공덕을 이 백중을 기해서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예는 목련존자 어머니지요. 목련존자 어머니가, 분명히 아드님이 스님들을 청해서 베풀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베풀지 않고 사시다가 지옥에 떨어졌어요.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어머니를 보고 스님들을 청해 부처님 설법을 전해서 지옥중생들을,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 제도했다고 해서 백중입니다. 그래서 ‘백중날은 지옥의 문이 열린다.’라고도 합니다. 네 번째는 어리석은 부모님을 지혜롭게, 진리의 길로 안내를 합니다. 극락왕생을 하면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세계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 가면 어리석음이 다 없어집니다. 이렇게 첫 번째는 믿음이 없는, 신심이 없는 부모님에게 믿음을 제공하고, 두 번째는 알게 모르게 부도덕한 행동을 한 부모님을 재계를 할 수 있게 하고, 세 번째는 인색한 부모님께 베풀 수 있는, 공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네 번째는 어리석은 부모님에게 지혜로운 삶을 사실 기회를 드립니다. 그래서 백중기도에 부모은중경을 늘 독송하고, 부모님의 크나큰 은혜를 깊이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백중입니다. 매년,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백중기도를 하게 되면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매번 갚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그 은혜를 갚다 보면 결국 내 공덕이 되는 겁니다. ‘자신의 공덕이 된다.’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넘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많은 꽃과 열매를 나누어줍니다. 뿌리 없는 나무, 꽃꽂이를 예를 들 수 있지요, 절대 열매를 남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통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많아요. 진관사 유튜브 시청자들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1:1로 똑같이 했을 때 그 자식은 분명히 훌륭한 자식이 될 겁니다. 부모님께는 1/10만 하고, 자식에게는 100% 다해주면 금방은 잘 되는 거 같지만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절대로 잘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모님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님을 무조건 극락세계로 보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백중기도를 하는 목적입니다. 극락세계에 분명히 보내드려야 되는데, 극락세계에 가시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마음으로 해야 이 극락세계로 부모님을 모셔드릴 수 있는가.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진관사에서는 천도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영가님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여러 방법으로 해드립니다. 요령을 흔들기도 하고, 북을 치기도 하고, 스님들이 염불을 하기도 하고, 여러분들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도 하고요.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지 부모님이 집착을 놓고 지혜를 증득해서, 자비가 증장한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게 해야 하는데요. 그렇게 하려면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천도재가 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절에서 행해지는 모든 불사가 다 천도에 해당됩니다. 부처님을 섬기는 게 불사죠. 법당을 짓기도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또는 시식, 베풀어 먹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다 천도입니다. 천도라는 것은 중생계에서 진리의 세계로 길을 옮겨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쪽 길로 가라, 어떻게? 반야심경에 나오죠.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저 피안의 길로.> 어떻게? <마하반야바라밀>로. 크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마하’라는 것은 크다라는 뜻이고, ‘반야’는 지혜, ‘바라’는 행하다입니다. 피안의 길을 보고, -‘밀’은 도착하다는 뜻이거든요-, 거기에 도착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진관사 신도님들은 봉사를 너무 잘해요. 봉사를 열심히 진심으로 해 주고 계시는데, 그 봉사하시는 것이 천도입니다. 나 스스로 피안의 길을 가기 위한 한 여정입니다. 재에는 3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수행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세속에서 하는 제사(祭祀)는 제사 제자이고, ㅓ,ㅣ이고, 절에서 지내는 재, 수륙재, 천도재는 ㅏ,ㅣ입니다. 수행의 의미가 담겨서 몸과 입과 마음, 신구의를 결계를 해서 맑히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것을 참회하는, 참회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참은 자기가 지은 죄를 반성하고, 회란 다시는 짓지 않겠다라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일체의 모든 존재가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재의 의미입니다. 49재, 천도재, 백중재 등. 일체의 모든 존재가 편안하기를 바라려면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을 뽑으면 공덕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여정은 공덕을 짓다 죽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성공한 삶입니다. 극락세계는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어요. 요즘은 명상이 유행이고, ‘늘 깨어있어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늘 깨어있어라’. 어떻게 깨어 있느냐. ‘내가 진리의 길에 있나?’를 늘 살피는 거예요. 그 살피는 힘이 지혜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명료하게 밝지 못하면 절대로 지혜를 증득할 수 없어요. 명료하게 밝으려면 마음이 고요해져야 해요. 그래서 지관(止觀)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에 자신을 바라본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하는 제일 빠른 방법은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염불을 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나의 잘못된 점은 잘못된 것으로 보이고, 잘한 것은 그대로 계속하면 됩니다. 그래서 중생의 길은 들여다보니까 탐욕(貪欲)이 가득해요. 탐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욕심내는 마음입니다. 욕이라는 것은 있는 것에 집착하는 거예요. 그래서 탐욕, 탐착(貪着), 탐애(貪愛), 이런 말을 쓰죠. 중생의 길은 이런 것이 가득한 거예요. 그런데 진리의 길에는 원력이 가득해요. 다시 말하면 꿈이 가득합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저를 이생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이렇게 진관사를 만났고, 부처님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나와 남이, 우리 가족이, 우리 조상이 다 극락세계로 가도록 인도하고 저도 가겠습니다.’ 이게 꿈입니다. 이런 꿈을 가진 것을 우리는 원력이라고 합니다. 반면 탐욕의 길에는 분노가 가득해요. 왜냐하면 없는 것을 탐하고, 있는 것에 집착하니 자기가 지족이 안 되니까 자꾸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화는 공덕을 다 태워버린다고 했습니다. 분노는 자기의 공덕이 다 타버리고 백 개의 장애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일념진심기하면 백만장문개(一念瞋心起 百萬障門開)라. 한번 화를 내면 백 가지 장애가 동시에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화를 내면 안 됩니다. 화는 지혜를 전부 태우고 공덕의 산을 전부 불태웁니다. 그러면 이쪽 진리의 길에는 뭐가 있느냐. 자비가 가득해요. 자비란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 마음 좋은 엄마 같아요. 그 마음 좋은 엄마 옆에 가면 힘 들었던 게 다 녹아버리죠. 그래서 지혜는 자비를 먹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자비가 없으면 지혜가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도록 노력하세요. 만약 자비심이 없다면 관세음보살 염불을 많이 하세요. 자비의 대표적인 부처님이 관세음보살님이세요. 그래서 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훔, 다 관세음보살 염불이고, 신묘장구대다라니도 관세음보살 염불이에요. 그래서 그 염불을 많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부처님을 닮아가요. 하기 전에는 자비가 1%밖에 없는데, 기도를 많이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 100% 자비가 가득 찹니다. 이러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세상에 무적입니다.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반기고, 또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나서 그 사람도 행복해지는 겁니다. 반면, 중생의 길에는 어리석음이 근본에 깔려있어요. 무명. 밝지 못함, 어리석음이 깔려있어요. 그런데 이쪽 진리의 길에는 지혜가 가득하더라는 거예요. 지혜가 가득해서 늘, 다시 말하면 잘못되고 트집 잡고 비방하는 일은 하지 않아요. 자비를 나누고 지혜롭게 행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그런 삶을 살게 되고 본인도 너무 편안하고 늘 행복해요. 이 두 길의 차이는 뭐냐, 한쪽은 탐착, 집착이라는 몹쓸 병이 붙어있어요. ‘내 아들이다, 내 남편이다.’ ‘나 공부 많이 했어. 나는 부자야.’ 이런 집착이 거기 붙어있어요. 집착은 바로 그림자로 고통이 따로 옵니다. 그런데 이쪽에는 보니까 무집착이에요. 집착이 없어요. 주지스님께서 늘 ‘세상의 주인은 자신이다. 집착만 없으면 자유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집착만 없으면 자유롭습니다. 그 대표적인 불교의 상징물이 뭘까요? 연꽃이에요. 지금 연꽃이 활짝 피는 계절입니다. 연꽃은 물속에 있는데 한 방울의 물도 자기가 가지지 않아요. 그러면서 밑의 뿌리는 연근이 되고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 한 개도 버릴 게 없어요. 그리고 꽃도 일부러 떨어지지 않고 뚝뚝 그냥 떨어져요. 그러면서 연씨를 남겨주는 거예요. 그게 불교의 대표적인 꽃이고, 무집착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극락세계에는 백련, 하얀 연꽃이 기다리고 있대요. 우리가 원력을 가지고, 자비를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우리 주어진 삶을 살다가 보면 어느새 백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고, 내 주변의 식구들은 다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존경할 것이고 또는 행복해 할 겁니다. 누구나 다 사람은 태어나면 곧 죽음을 예약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예약되어있습니다. 그 죽음의 시점에 와서는 헌 옷 벗고 새 옷 받는 그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너무 명료하게 잘 살았기 때문에 겁 낼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환희로워요. 이 무거운 헌 옷을 벗고 새로운 아이의 몸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극락에 태어나니까, 그래서 원생이 되어서 내가 중생을 제도할 수도 있어요. 그 극락세계는 이 우주공간에서 제일 학군이 좋은 곳입니다. 가장 학군이 좋아서 거기는 부처님을 배출하는 학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잘못 아시면 안 되는데, 극락세계와 부처님의 열반의 세계는 다릅니다. 극락세계가 강이라면 부처님의 세계는 바다입니다. 극락세계 학교를 무조건 졸업해야 부처님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극락세계 가는 거 간단하죠. 어떻게 해야 돼요? 노는 입에 염불하고 공덕 짓고, 누구 시비할 필요도 없어요, 절대로. 시비하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금쪽같은 시간을, 염념이 상속(念念相續)이라,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이것이 백중 기도하는 목적입니다. 또 극락이라는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공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님,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마음이에요. 어떤 마음이냐. 그 피안의 세계에 길을 가는데 큰 연못이 있어요. 연못에 하늘의 구름이 둥둥 떠 가고 있습니다. 연못에 하늘이 비추었어요. 근데 어리석은 자는 ‘어머, 세상에. 저 물속에 하늘 좀 봐라. 너무 아름답지 않냐’ 이렇게 얘길 해요.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뭐라고 얘길 할까요?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 물이 맑구나. 물이 너무 맑구나.’ 이렇게 얘길 해요. 차이가 엄청나죠. 그 물속에는 하늘이 없습니다. 위를 쳐다봐야 하늘이 있는데, 물속에 있는 하늘에 우리는 집착해서 마음을 보고 있다는 거. 그게 중생심이에요. 그런데 진짜 물이 고요했기 때문에 하늘이 다 비치는 거예요. 내 마음이 고요하면 누가 와도 그저 그냥 비칠 뿐이지 그 사람에 게 내 마음이 집착하지 않아요. 우리는 남의 일도 내 일처럼 가져와서 막 속상해하고 욕해요. 왜 남의 일인데, 신랑 일인데 내가 가져와 가지고 내 시간을 업을 짓는 시간으로 쓰느냐 그거에요. 아들 일인데, 그것도 내가 가지고 와 가지고 채근하며 화 내며 공덕의 산을 다 불태우는 거예요. 이거는 너무 어리석은 겁니다. 그래서 매년 백중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공덕을 닦고 기도를 하는 것이 백중기도의 공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
[백중기도] 7월 18일 백중기도 2재 법문
가섭스님 2021-07-18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4차 대유행으로 인해 방역지침이 4단계로 격상되고 맞는 첫 번째 일요일입니다. 그리고 백중은 첫 번째를 넘어서 2번째 재로 돌아왔습니다. 우선 4단계로 격상되면서 고마워해야 할 일이 하나가 있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지켜질 거라고는, 상상 그 이상으로 잘 지켜지고 있는 거 같아요. 지금 유튜브로 보고 계신 분들은 전체 법당 내부가 잘 보이지 않겠지만 스님들만 앉아 있어요. 그리고 촬영하는 몇몇 스텝들하고요. 그래서 아마 짐작하건대 이번에 이 4차 대유행도 조만간에 잠잠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특히 백중기도를 봉행한 공덕으로 역병이 물러나서 하루속히 마스크를 좀 벗고, 그리고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바람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방송을 다 보시고 나서 나중에 시간 되시면 나가서 하늘을 한 번 보세요. 하늘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맑고. ‘아, 청량하다’란 게 있는데, 우리 경전에 보면 ‘청량하다’라는 표현이 나오거든요, 청량. ‘청량하다라는 게 저런 걸 말하는구나’라는 걸 알 수가 있어요. 구름이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고, 구름만 깨끗할 뿐이 아니라 하늘도 깨끗해요.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늘에 앉아서 이렇게 보면 마음이 좀 쉬게 되는 그런 날씨니까, 그렇게 해보시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은 백중 2번째 제사인데, 올해 전체 백중은 <대전환과 공동체> 주제로 법담을 나누기로 했잖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대전환 중에 어떤 걸 대전환이라고 얘길 하느냐.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는 거잖아요. 요즘에는 대전환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국가나 정부나 또 각 계층에서 다 대전환의 시기다.’라는 말을 합니다. 특히 백 년 만에 찾아오는 이 역병으로 인해서 대전환이 이루어진다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그 대전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야 되느냐.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되느냐. 또 기술적으로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되느냐. 이런 논의들을 하게 되고 지금도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고, 또 준비되고 있어요. 대전환이라는 것은 그렇게 현상적인 우리 삶 전체의 전환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백중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대전환을 이야기하겠죠. 그 마음의 대전환은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란 말이에요. 신행과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지, 대전환, 특히 마음의 대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때로는 어렵다고들 말하지요. 왜냐하면 내가 직접 관찰하고 관조하고 실천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해 내는 거고, 내가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에 힘 드는 거죠. 그런데 내가 만들지 않은 건, 내가 참여하지 않은 건, 내가 발견해 내지 않은 건 내게 될 수가 없거든요. 과정은 알 수 없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굉장히 그 성과가 높다. 그 살림살이가 다 자기 것이 될 수가 있다란 측면에서는 효과성은 최고인 거죠. 우리가 대전환을 해야 되는데, 대전환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늘 같은 것을 고민하고, 같은 조건이 만났을 때, 똑같은 질량의 번뇌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절에 오래 다닌 보살님들도 같은 고민을 하거든요. 그 같은 고민이라는 게 뭐냐 하면, 욕망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욕망이라는 거 자체가 자기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자식에 대한 욕망, 물질에 대한 욕망,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다 결부되어 있는 거잖아요. 이러한 욕망에서 좀 쉬려면 마음의 전환을 이뤄야 하는 거예요. 마음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한 거잖아요. 쉽게 말하면 여기 컵을 갖다 놨는데, 물을 마시는 데 내가 컵 뚜껑을 열지 않으면 컵의 물을 마실 수 없는 거처럼, 내가 컵 뚜껑을 직접 열어야 하잖아요. 그런 이치하고 똑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신행을 하거나 내지는 절에 와서 기도를 하면서 나 스스로 뚜껑을 열지 않고 물을 달라고, 물을 먹게 해달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물을 먹을 수 있나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목만 타는 게 아니라 애가 타지요. 애가 타다가 마음이 고파지기 시작해요.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게 굉장히 힘든 겁니다. 허덕증이라고 해요. 허덕거리게 되죠. 그러다가 그게 충족이 안 되면 화를 내게 되죠. 화를 내게 돼요. 이런 과정들이 결국 내가 마음을 전환 시킬 계기를 잡질 못했기 때문이에요. 니까야에 보면, 부처님의 초기 경전에 보면, 옷감의 비유가 있어요. <옷감 비유경>이 있는데, 거기 보면 부처님이 비구들을 부릅니다. “비구들아, 여기에 때가 많이 묻어있는 옷이 있다고 치자. 이 때가 많이 묻어있는 옷감을 물을 들이면 물이 잘 들겠느냐, 안 들겠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여러분 어떠세요?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 중에 땀이 잔뜩 배어서 얼룩져 있는 옷감이 보기 싫어서 거기에 파란색, 노란색, 주황색 물을 들이면 그 물이 잘 들까요, 안 들까요? 물들죠. 물은 드는데, 그대로, 땀자국이 남은 상태 그대로 물이 들죠. 부처님도 똑같이 말씀을 하십니다. <옷감비유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인데, 1차 초벌로 땀자국을 다 빼고 물을 들여야지 제대로 물이 들잖아요. 땀이 배어 있는 옷감을 세제를 풀어서 땀자국을 빼는 것, 이게 전환입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물이 제대로 들 수가 있는 거거든요. 저번 주에 이야기 드린 것 중에 오욕칠정이 있습니다. 오욕칠정은 우리의 삶 자체예요. 중생의 삶을 다르게 표현하면 오욕칠정이라고 얘기해요.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의 끄달림이거든요.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의 끄달림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비빔밥이 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내려놓는 전환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이 오욕칠정은 조건에 의해서 올라오는 마음입니다. 이 조건이라는 용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이해를 못 하는 한 불교 용어도 깨지지가 않아요. 조건을 이해해야 됩니다. 그래서 조건은 굉장히 중요한 용어 중에 하나에요. 이거는 승, 재가를 떠나서 수행을 좀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조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조건. 유튜브를 보시거나, 이 법문을 함께 하시는 분들은 자녀들이 결혼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뭐예요? 조건이에요. 그런데, 누구나 다 조건을 보게 되어 있어요.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조건을 보게 되어 있지요. 출가할 때도 조건을 봐요. 출가할 때도 조건을 봅니다. 어떤 조건이냐. 스승이 계를 잘 지키는 스승이냐. 그리고 수행을 잘하는 스승이냐. 그리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스승이냐. 이게 다 조건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조건을 보면 좋은데, 명예가 높은 스승이냐, 돈이 많은 스승이냐, 또 잘생긴 스승이냐, 이렇게 보기 시작하면 거기에 괴로움이 붙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결혼도 마찬가지잖아요. 부인될 사람을 만나고, 남편 될 사람을 만나는데, 조건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조건을 사람이 참 착실하다, 순하다, 그런 것들을 보면 그 조건이 착한 조건이 되는데, 돈이 많은지, 아버지가 돈이 많은지, 할아버지가 돈이 많은지, 지위가 높은지, 정말 쓸데없는 것 중의 하나가 잘 생겼는지, 키가 큰지, 이런 것들을 조건으로 보면 오래 못 가요. 그러니까 생김새를 조건으로 보면 그건 금방 식습니다. 그보다 조금 오래 가는 게 뭐냐 하면 돈이 많은지, 지위가 높은지 이런 거죠. 그 집안이 어떤지.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유통기한이 있어요. 결국은 이 조건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떤 게 되느냐. <사랑과 전쟁>이 됩니다. <사랑과 전쟁> 아시잖아요, 드라마에 보면 거기에 10건 중의 8건이 전부 다 조건을 보고 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착한 조건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조건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사랑과 전쟁의 주인공으로 나와요. 조건은 누구나 다 보게 되어 있습니다. 조건에 따라서 우리 삶은 달라지는 거거든요. 우리가 불교의 핵심이라고 하는 연기법은 조건이라는 것을 이해해야지만 이해할 수 있어요. 조건. 조건은 그 바탕에 뭐가 있냐면 기억이라는 게 있습니다. 조건은 기억에 의해서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억이라는 것을, 반드시 리멤버(remember)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적으로는 생각 념(念)자라고 하지요. 부처님은 이 기억이라는 것을 잘해야 조건이 달라진다고 했기 때문에, 팔정도에 정념(正念)이라는 것을 넣은 거예요. 바른 생각. 옳은 생각. 착한 생각인 거죠. 조건이라는 것은 생각을 기반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그래요. 쉽게 말하면, 이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했던 습관대로 올라오는 게, 올라오는 생각이 조건이란 말이에요. 어떤 대상에게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그 조건만 되면 화를 냅니다. 그게 조건이에요. 거기에는 당연히 카르마(karma)라는 게 연결되어있어요, 습관이라고 하는 게. 그 습관은 기존에 저장된 기억을 바탕으로 올라와요. 그러니까 조건과 카르마와 기억은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이게 좀 어려운데, 왜 어렵냐 하면 절에 와서 잘 살게 해달라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아들 대학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런 건 얘기 안 해주고, 뭔 기억과 습관과 조건을 얘기하니까 좀 갑갑할 수 있는데, 이걸 알아야지 그게 되요. 지금 우리가 와서 기도하는 것은 이 컵의 뚜껑을 열고 이 컵의 물만 마시는 거예요. 제가 이야기하는 조건을 이해하고 카르마를 이해하고 기억을 이해하는 것은 한없이 끊이지 않는 우물을 발견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떤 믿음이냐 하면,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의 정수기의 물을 틀면 정수기의 물이 끊어지지 않고 나온다는 믿음이 있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가서 물을 틀었는데, 정수기에서 물이 안 나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 물이 안 나오는 게 뭐냐 하면 그런 조건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의 지혜 샘이 딱 끊겨 화가 올라오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의 샘물을, 지혜의 샘물을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이걸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흐트러짐 없이 성취될 수 있는 거예요. 누구나 다 발원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마음의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금방 식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계기는, 그 기도하게 된 계기는 자녀들의 대학 입시가 됐든, 남편의 사업이 됐든, 가족의 건강이 됐든, 삶의 여러 가지 장애를 해결하는 계기는 될지언정, 그 계기가 이렇게 조건을 이해하고, 카르마를 이해하고, 기억을 이해하게 되면 정말로 우리가 평생 나에게 청정한 샘물을 제공하는 보물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백중 초재부터 4재까지는 이런 대전환에 관련된, 마음 전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번 정도는 왜 백중과 공동체와 연결이 됐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공동체를 이해해야지만이 행복으로 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할건데, 결국은 백중을 통해서 기도를 했지만, 또 백중 입재해놓고 오늘 법문을 듣고 있지만, 이 조건을 이해해야지만이 카르마를 이해하게 되고, 기억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예요. 자, 조건을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6가지 기관을 통해서 6가지 경계를 만나잖아요. 이걸 <부딪침>이라고 표현합니다. 부딪치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아까 하늘을 보라고 그랬어요. 하늘을 보면 파란빛, 구름은 하얀빛, 이렇게 순간적으로 부딪침을 통해서 인지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잖아요. 이걸 전오식(前五識)이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의식(意識)이라고 있는데, 그 의식부터는 우리가 무의식이라고 얘기하지만, 무의식인데 저장창고란 말이에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유식에서는 말라식이니, 아뢰야식이니, 아타나식이니, 암마라식이니 이렇게까지 이야길 해요. 아뢰야식, 아타나식, 암마라식, 9, 10까지 가며 이야길 하는데, 거기까진 안 가더라도, 저장창고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부딪침을 통하면 기억이 올라오는 거예요. 기억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조건을 딱 만나게 되면 그 조건이 카르마를 통해서 우리 저장창고에 있는 기억이 올라오는 거예요. 근데 그 저장창고에서 올라와서 카르마를 통과할 때 그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전환시킬 힘이 우리에게 있는 거예요. 이건 우리만이 갖는 겁니다. 저나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이 기억을 전환시키는 힘이 있는 거예요. 그동안은 전환시키려고 하지 않은 거지요. 전환시키려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렵죠. 이걸 전환시켜야지만 이 창고들의 색깔이 변하는 거예요. 질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질적으로. 옛날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화가 확 올라오던 것이 어느 날 그것을 내가 관조했어요. 관찰했어요. 그래서 ‘어 이건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 아, 맞아. 그때 그 스님이 백중 입재 때 모든 상은 비상이라고 얘기했어. 화도 원래 상이 아니겠네. 원래 있는 게 아니겠네. 그냥 조건에 의해서, 조건에 부딪침에 의해서 카르마에 의해서 기억이 되살아난 거뿐이겠네.’라는 생각으로 탁 바꿔 화를 안 내게 되면 그게 그다음부터는 저장이 돼요. 그래서 우리의 기억창고가 있는데, 기억창고의 색깔들이 변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조건을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조건. 우리는 조건에 의해서 반응하는 거다. 그 조건에 카르마가 반응하고, 기억이 올라오는데 그 기억 자체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냥 습관으로 하는 것뿐입니다. 괴로움은 어떻겠어요? 괴로움도 그렇죠. 즐거움은 어떻겠어요? 즐거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똑같은 거예요. 우리는 즐겁다고 좋아하잖아요. 괴롭다고 슬퍼해요. 그거는 모양이 다를 뿐이지 그 형태는 똑같은 거예요. 이걸 알면, 기뻐하는 사람은 충분히 기뻐하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아요. 슬퍼하는 사람은 정말로 애도하고 슬퍼하고 추모하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이걸 알아야 되는데. 이러면 삶의 질이 굉징히 높아집니다. 삶의 질이 높아져요. 그리고 그전에 하던 인색함이나 무자비함이나 화냄이나 삐짐이나 질투나 이런 것들이 바뀌기 시작해요. 이걸 바꿔야 삶이 바뀌는 거거든요. 삶이 바뀌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 조건이 많은 사람일수록, 조건이 까다로울수록 번뇌하고 번민하고 괴로움하고 정비례합니다. 조건 많은 사람치고, 조건 까다로운 사람치고 사람 좋은 사람 없어요. 정말로 굉장히 까다로운 거 같은데 실제로 보면 아무 조건 안 내세우는 사람 있어요. 놀라운 거는 우리 절집 와도 마찬가지예요. 큰스님일수록 굉장히 어려워요. 여기서 큰스님이라고 광의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큰스님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어려운데, 막상 와서 겪어보면 물 같은 분이고, 공기 같은 분이고, 공간 같은 분이고, 걸림이 없는 분이라고 얘길 합니다. 조건이 없어요. 의외로 출가한 지 얼마 안 되는 마음이 칼날같이 서 있는, 마치 보기에는 철저한 계율수행과 철저한 자기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조건이 더 까다로워요. 그런데 마음의, 괴로움의, 괴로움의 무게를 재보면 이쪽이 훨씬 더 무거워. 우리 보살님들도, 거사님들도 마찬가지예요. 조건이 까다로운 사람이 집안에서 분란이 많습니다. 까탈스럽다고 얘기하잖아요. 까탈스럽다. 까탈스럽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괴로움이 더 많아요. 저도 까탈스러운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얘길 해요, 주변에서. 그런데 막상 절 겪어보면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닌 걸 알아요. 제가 번뇌가 없다, 괴로움이 없다는 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그 괴로움과 번민을 줄여가려고 노력하거든요. 마음을 전환시키려고 노력은 해요. 제가 출가한 지가 28년째인데, 28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거예요. 이건 완성이라는 게 없어요. 이걸 이생에 어떻게 완성하겠습니까. 부처님은 몇 세 동안 이 전환을 하려고 노력한 거예요? 대전환의 노력을 하신 겁니까? 500세 동안 하신 겁니다. 500세. 그 대전환의 정말 진안한 세월인 거잖아요, 500세 동안은. 자 그러니까 이 대전환이라는 건 끊임없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러면,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지금 법회에 동참하는 분들은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 오셔서 이 마음의 대전환에 노력들을 얼마나, 얼마큼 깊이 진중하게, 요즘에 엄중하게 라는 말이 유행인데, 엄중하게 하셨나요? 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조건이라고 하는 것, 카르마라고 하는 것, 그리고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정원에 와서 지금 이 법회를 함께 하는 분들은 이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조건이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딪침이 올 때 이것을 알아차려서 전환시켜야 되요. 내 마음이 전환시켜서 맑아지면, 전환시키면 어떤 효과가 벌어지냐 하면, 이게 좀 더 힘을 받으면 마음이 밝아진다는 게 내 스스로가 체득하게 돼요. 그걸 청량감이라고 얘기합니다. 청량감이라고 얘길 해요. 그렇게 마음이 밝아져야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옷감 비유처럼 그 마음의 바탕에 있는 기억들, 리멤버가, 기억이 바뀌어야 내가 순간순간 끌어오는 기억들의 샘물이 맑아져야 내 마음이 밝아지고, 그래야지 기도성취가 빨라지는 거예요. 이 기억의 창고에, 내지는 기억의 우물에 물이 시커멓고 어두컴컴하고 더러워져 있는데 그거 끌어올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버려야 되는 물이잖아요. 빼야 되는 물이고. 그래서 우리가 대전환을 통해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거거든요. 해탈할 수 있는 거거든요. 더 나아가서 우리가 대전환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대전환의 힘이 다른 말로는 바라밀이에요. 바라밀. 바라밀 힘인데, 그래서 우리의 삶을, 괴로움에서 늘 지는 삶, 내지는 굴복하는 삶, 내지는 끌려가는 삶에서, 내 삶을 이끌고 내 삶을 추동해내고, 그리고 내 삶을 승리로 가져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 순간부터는 내 마음의 대전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순간순간이다. 그래서 마음이 즐거울 때는 잘 안 되니까 혹여라도 화가 날 때, 짜증이 올라올 때, 그리고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때 마음을 들여다봐라. 그리고 그 마음의 습관을 바꿔라. 그래야 기억이 바뀐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백중기간 동안이라도 정말 귀한 작은 힘들을 얻으시기를 바라고요. 제가 오늘 <불교성전>을 하나 들고 왔는데, 종단에서 발간한 <불교성전>입니다. 우리 보살님들, 거사님들 중에는 기도를 굉장히 많이들 하세요. 경전을 금강경 읽고, 관음경 읽고, 천수경 다라니 21독 하고, 108배하고. 어떤 때 보면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근데 거기다가 이 불교성전을 꼭 넣어서 해보세요. 각 장과 각 절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에 많이 읽지 마시고요.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똑같이 지극하게 하는 게 중요한 거거든요. 매일 똑같은 양으로 지극하게. 그래서 한 장이라도, 제목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한 장을 읽어서, 이걸 다 읽으려면 1년 이상 걸릴 거 같은데,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서, 1일1독송해보세요. 1불자 1불교성전 갖기 운동을 종단 차원에서 하고 있으니까 우리 진관사 신도분들도 이 불교성전을 하나씩 구매하셔 가지고 집에 잘 모셔서 기도, 신행하는데 나침판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또 마음이 흔연하게 난다면 사서 주변 친구들한테, 불교 종자가, 불교 신심이 좀 있는 분인데 절에 잘 안 나온다 하는 분들에게 나누셔서 길벗으로서 함께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 나오시기를 말씀을 드립니다. 코로나가 다음 주까지 4단계니까, 지금 분위기로는 연장될 거 같긴합니다만, 그래도 절에 직접 오지 못하지만, 유튜브에 들어와서 법회에 함께하는 진관사 신도분들 가내에 부처님의 가피와 부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하게 기도 올리고, 개인 방역을 철저하게 지켜서 건강한 삶 되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백신은 빨리 맞으셔서 집단 면역이 될 수 있도록 동참 방역을 해 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면서 오늘 법담을 접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